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한 3월의 어느 날, 완주군 비봉면에 숨겨진 보물 같은 장소를 찾아 떠났습니다. '하늘을 부르는 땅'이라는 뜻을 가진 천호(天呼) 성지는 이름처럼 하늘로 향하는 간절한 기도와 순교자들의 숭고한 영혼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첩첩산중에 숨겨진 이 성스러운 공간에서 만난 170여 년의 신앙 역사와 그 속에 담긴 감동의 순간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산속에 피어난 신앙의 씨앗
"이 산속에 성지가 있다고요?" 비봉면으로 향하는 길, 내비게이션을 따라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커지는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천호성지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곧 감탄으로 바뀌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시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충청도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 험준한 산악지대로 숨어들었습니다. 조선 후기 지리서 '택리지'에는 "산세가 험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기록될 정도로 첩첩산중이었던 이곳이 박해를 피해 도망 온 신자들의 은신처가 되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호산 일대에는 천호(다리실) 공소를 중심으로 여러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처음 성인들의 묘지 맞은편 골짜기인 무능골에 터를 잡았다가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 점차 아래쪽으로 내려와 지금의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이 마을 주민 전체가 신자인 국내 유일의 전신자 교우촌이라는 사실입니다.
"저기 보이는 저 집들이 모두 신자 가정이라니, 정말 특별한 곳이네요!" 함께 방문한 친구의 말에 저도 새삼 이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실감했습니다.
현대적 영성이 숨 쉬는 부활성당과 박물관
성인 묘역에서 내려오는 길에 마주한 부활성당은 2007년 5월 19일에 완공된 천호성지의 중심 시설입니다. 산자락을 배경으로 자리한 성당의 모습이 마치 이곳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듯 아름다웠습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목재로 마감된 따뜻한 분위기와 시원하게 뚫린 천장의 조화가 경건함과 개방감을 동시에 선사했습니다. 순례객들이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평일임에도 꽤 많은 분들이 방문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사는 매일 11시에 봉헌된다고 하네요. 월요일은 제외하고요."
"다음에는 미사에 참례하고 가면 더 의미 있는 방문이 되겠어요."
부활성당에서 나와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2008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세계 희귀 성물 소장자 오문옥 씨가 천주교 전주교구에 성물 1,000여 점을 기증하고, 전주교구와 완주군청이 협력하여 건립한 공간입니다.
'성 바오로관'과 '성 베드로관'으로 구성된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는 기도와 묵상의 장소로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내부에 들어서자 웅장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가 방문객을 감싸안는 듯했습니다.
"저 성모상은 정말 아름답네요."
"유럽 곳곳의 성지에서 볼 수 있는 보물들이 여기 완주에 있다니 신기해요."
박물관을 나오며 들른 쉼터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숲과 하늘이 마음의 평화를 더해주었습니다.
산책하듯 만나는 순교자들의 발자취
계획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자연스럽게 '순례자의 길'로 향했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고, 문득 이 길이 170여 년 전 박해를 피해 도망 온 신자들이 걸었던 그 길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저절로 경건해졌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천호성지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성인 묘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손선지 베드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 요셉과 같은 해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순교자들의 마지막 말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는 "우리는 오늘 천국의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된 날입니다"라고 했고, 성 손선지 베드로는 "나는 이제 죽으러 가오. 이 옷은 더 이상 내게 소용이 없으니 이 옷을 입으시오"라며 동료 신자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담담한 용기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천주교도 없었겠지요?"
"그렇겠죠. 신앙은 물론이고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묘역 앞에서 나눈 짧은 대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소나무 향기 가득한 숲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음속에 쌓여있던 근심들이 조금씩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종교가 다르더라도, 혹은 특정 종교가 없더라도 이곳의 성스러운 기운은 모든 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물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연과 신앙이 어우러진 순례길
천호성지의 다양한 순례길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 게세마니 동산, 로사리오 길 등 여러 테마의 길이 있었고, 십자가의 길을 집중적으로 걸어보았습니다.
천호성지 십자가의 길: 순교의 땅에서 만나는 예수의 수난
천호성지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여정을 묵상하는 성스러운 순례 코스입니다. 천호산의 고요한 숲길을 따라 조성된 이 특별한 경로는 신앙인들에게 깊은 영적 체험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이 갖는 의미와 특징을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심
성경 배경: "빌라도가 군중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예수님은 그들의 뜻대로 하라고 넘겨주었다." (루카 23:24-25)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천호성지의 첫 번째 처에 서면,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을 받으시는 모습이 석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빌라도가 손을 씻는 상징적 행위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침묵 속에서 부당한 판결을 받아들이십니다. 이 모습은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때 부당한 심문과 재판을 받았던 한국의 순교자들과 깊은 연관성을 갖습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불의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진리를 위해 어떤 대가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성경 배경: "그들은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우고 사형 장소로 끌고 나갔다." (요한 19:17)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두 번째 처에서는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메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무게는 단순한 나무의 무게가 아닌, 인류의 모든 죄를 상징합니다. 천호산의 가파른 지형은 그 자체로 십자가의 무게를 실감나게 해주는 자연 환경입니다. 천호 교우촌으로 숨어든 신자들이 험난한 산길을 올랐던 것처럼, 이 길은 신앙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상기시킵니다.
묵상 포인트: "내 삶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짊어지고 있는가? 예수님처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제3처: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
성경적 배경: 직접적인 성경 기록은 없으나 교회 전통에서 유래한 이 장면은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육체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세 번째 처에서는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로 첫 번째로 넘어지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천호성지의 자연 지형을 따라 조성된 이 구간은 실제로 약간의 경사가 있어, 순례자들도 그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의 첫 시련을 맞았을 때 흔들렸던 초기 신자들의 모습과 일부 순교자들이 처음에는 신앙을 숨겼던 인간적 약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묵상 포인트: "나의 첫 번째 실패와 넘어짐은 무엇이었나? 그 속에서도 일으켜 세우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는가?"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성경적 배경: 직접적인 성경 구절은 없으나, "또한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아픔을 겪으실 것입니다"(루카 2:35)라는 시메온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네 번째 처에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 슬픔에 잠긴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는 감동적인 순간을 묘사합니다. 천호성지에서는 특히 이 장면이 가족 단위로 순교했던 한국 교회의 특성과 깊이 연결됩니다.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순교의 길을 걸었던 이야기들과 연결하여 묵상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묵상 포인트: "내 가족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함께하고 있는가? 성모님처럼 말없이 연대하며 사랑으로 함께하고 있는가?"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성경 배경: "그들은 시골에서 오는 키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 뒤를 따르게 하였다." (루카 23:26)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다섯 번째 처에서는 로마 병사들에 의해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게 된 시몬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천호성지의 이 구간은 특히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짊어졌던 초기 한국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박해 시대 신자들이 서로를 도왔던 천호 교우촌의 정신과도 연결되는 장면입니다.
묵상 포인트: "처음에는 원치 않았지만 결국 그리스도를 돕게 된 시몬처럼, 내 삶에서 의무로 시작했지만 은총이 된 경험은 무엇인가?"
제6처: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성경적 배경: 직접적인 성경 기록은 없으나 교회 전통에서 유래한 이 장면은 작은 사랑의 행위가 영원히 기억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여섯 번째 처에서는 군중 속에서 용기 있게 나서서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리는 베로니카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이 장면은 박해 시대에 순교자들을 도왔던 무명의 신자들, 천호성지 근처에 숨어 살면서 신앙을 지켰던 이들의 용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은 용기가 역사에 길이 남는 증거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사회적 위험이나 비난을 무릅쓰고 신앙의 가치를 위해 행동한 적이 있는가? 작은 사랑의 행위가 어떻게 영원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제7처: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성경적 배경: 직접적인 성경 기록은 없으나, 계속되는 고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일곱 번째 처에서는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다시 한번 쓰러지시는 예수님을 마주합니다. 천호성지의 이 구간은 더욱 가파른 오르막길에 위치하여, 반복되는 어려움의 무게를 실감하게 합니다. 이는 장기간 지속된 한국 교회의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인내와 연결됩니다. 특히 천호성지의 역사가 기해박해(1839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의 고난을 포함하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묵상 포인트: "같은 실패와 죄를 반복하면서도 다시 일어서게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성경 배경: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루카 23:28)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여덟 번째 처에서는 자신을 위해 우는 여인들에게 오히려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표현됩니다. 이 장면은 천호성지의 가족 중심 신앙 공동체와 특별히 연결됩니다. 어려운 시기에도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천호 교우촌 부모들의 헌신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입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나 자신의 문제만 바라보는가, 아니면 더 큰 공동체와 다음 세대를 위한 걱정과 기도를 하고 있는가?"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성경적 배경: 직접적인 성경 기록은 없으나, 극한의 고통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 비움(kenosis)을 상징합니다.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아홉 번째 처에서는 골고타 언덕 가까이에서 세 번째로 넘어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합니다. 천호성지의 가장 가파른 구간에 위치한 이 처는 극한의 시련을 표현합니다. 이는 순교 직전까지 신앙을 지켰던 성인들의 결단과 연결됩니다. 특히 천호성지에 안장된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손선지 베드로 등이 순교의 순간까지 신앙을 지켰던 굳건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께 의지하며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 비움을 내 삶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심
성경 배경: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다음, 그분의 겉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요한 19:23)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열 번째 처에서는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제비를 뽑는 장면을 만납니다. 이 장면은 모든 인간적 존엄성과 소유를 박탈당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천호성지에서는 이 장소가 재산을 몰수당하고 신분을 박탈당했던 많은 순교자들의 경험과 연결됩니다. 특히 양반 출신이었던 순교자들이 신분과 재산을 포기하고 신앙을 선택했던 결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세상적 가치와 소유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가?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리스도만 남는다면 충분한가?"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
성경 배경: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그 두 죄수도 못 박았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루카 23:33-34)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열한 번째 처에서는 예수님의 손과 발이 못박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을 마주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천호성지에서는 이 장소가 자신들을 처형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던 순교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성 손선지 베드로가 순교 직전 자신의 옷을 형리에게 벗어주며 보여준 사랑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묵상 포인트: "나는 나를 해치는 이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가?"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성경 배경: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루카 23:44-46)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열두 번째 처에서는 세 시간의 고통 끝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며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합니다. 이 처는 천호성지의 가장 정적인 공간으로, 침묵 속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순교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굳건한 신앙과 평화로운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입니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가 "우리는 오늘 천국의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된 날입니다"라고 한 말씀이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묵상 포인트: "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충실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제13처: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짐
성경 배경: "아리마태아 출신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요셉이라는 부자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빌라도가 내어 주라고 명령하였다." (마태 27:57-58)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열세 번째 처에서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니코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고,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기는 비통한 장면을 묵상합니다. 천호성지에서 이 처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곳 천호성지는 순교자들의 시신을 모셔온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성인들의 유해를 비밀리에 수습하여 이곳에 모신 신앙 공동체의 헌신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입니다.
묵상 포인트: "상실과 이별의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신앙이 있는가? 나는 순교자들의 유산을 어떻게 소중히 이어가고 있는가?"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성경 배경: "요셉은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셨다. 그 무덤은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곳이었다." (루카 23:53)
천호성지에서의 묵상: 열네 번째 처에서는 예수님의 시신이 새 무덤에 안치되는 장면을 묵상합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듯한 이 장면 속에 사실은 부활의 희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천호성지에서 이 마지막 처는 순교자들의 묘역으로 이어지는 연결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묻힌 순교자들의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교회의 씨앗이 되었음을 상기시키는 장소입니다. 특히 1983년 호남교회사연구소가 진행한 발굴 작업을 통해 성 정문호와 성 한재권의 유해가 발견되어 순교자들이 묻힌 이 땅이 진정한 성지로서 확인받은 사실과 연결됩니다.
묵상 포인트: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을 향한 과정임을 믿는가? 내 삶의 어둡고 절망적인 순간들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가?"
십자가의 길의 의미
십자가의 길(Stations of the Cross 또는 Via Crucis)은 가톨릭 전통에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집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수난의 여정을 14개의 처(處, Station)로 나누어 묵상하는 신앙 의례입니다.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고통의 길)를 상징적으로 재현한 이 순례 경로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 의미를 깊이 새기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천호성지 십자가의 길의 특징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은 천호산의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그 자체로 특별한 묵상 공간이 됩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조성된 이 경로는 약간의 오르막을 포함하고 있어 예수님의 실제 고난의 여정을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각 처마다 예수님의 수난 장면을 묘사한 석조 부조가 설치되어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인 예술 작품으로 신자들의 묵상을 돕습니다. 특히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은 순교자들의 성지라는 이곳의 특성과 맞물려, 한국의 순교성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함께 묵상할 수 있는 깊은 영적 체험을 제공합니다.
십자가의 길 14처 여정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은 전통적인 14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심: 빌라도가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곳에서 신자들은 부당한 판결에도 침묵하신 예수님의 겸손을 묵상합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를 어깨에 메시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로 첫 번째 넘어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짊어지신 주님을 묵상합니다.
-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 슬픔에 잠긴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두 분의 눈빛 교환 속에 담긴 깊은 사랑을 묵상합니다.
-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키레네 사람 시몬이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게 되는 장면으로,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의미를 새깁니다.
-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베로니카가 용기 있게 나서서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리고,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지는 장면입니다.
-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다시 한번 쓰러지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반복되는 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시는 주님의 인내를 묵상합니다.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자신을 위해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오히려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묵상합니다.
-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골고타 언덕 가까이에서 마지막으로 넘어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극한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상징합니다.
- 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심: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제비를 뽑는 장면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극도의 겸손을 묵상합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 예수님의 손과 발이 못박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묵상하며, 우리를 위한 그 희생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세 시간의 고통 끝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며 돌아가신 예수님의 최후를 묵상합니다.
-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짐: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니코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고,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기는 비통한 장면을 묵상합니다.
-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마지막 처에서는 예수님의 시신이 새 무덤에 안치되는 장면을 묵상하며, 죽음 너머의 희망을 기대합니다.
천호성지에서는 일부 성지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15번째 처는 별도로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십자가의 길 순례를 마친 후 방문할 수 있는 부활성당을 통해 부활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마무리 기도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 순례를 마치면, 부활성당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는 십자가의 길이 결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짐을 상징합니다. 부활성당에서 드리는 마무리 기도는 순교자들의 희생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진 것처럼, 모든 고난의 여정 끝에는 부활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주님,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이 천호성지에서 순교자들의 발자취와 함께한 십자가의 길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빛과 용기가 되게 하소서. 당신이 보여주신 사랑과 용서, 인내와 희생의 정신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게 하시어, 우리도 각자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당신을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십자가의 길 묵상 방법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은 개인적으로 또는 단체로 순례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각 처에 도착하면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라고 말하고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 해당 처의 상황을 묵상하고 관련 기도문을 바칩니다.
-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칠 수 있습니다.
- 다음 처로 이동하며 찬송가를 부르거나 묵주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천호성지에서는 특별히 매주 금요일 오후에 공동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봉헌하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사순 시기에는 더욱 많은 순례자들이 참여합니다.
십자가의 길과 순교자의 정신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이 특별한 이유는 한국 천주교 순교성인들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이 성스러운 땅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함께 묵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듯이, 한국의 순교자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가 "우리는 오늘 천국의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거한 분들입니다.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예수님의 수난과 함께 한국 순교자들의 희생도 함께 묵상할 때, 그 영적 체험은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방문 안내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은 연중 개방되어 있으며,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경사가 있는 구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각 처 사이의 거리는 적당하여 천천히 묵상하며 걷기에 적합합니다.
사계절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천호성지의 십자가의 길은 봄의 새싹, 여름의 푸르름,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과 함께할 때 더욱 특별한 체험을 선사합니다. 특히 사순 시기와 성주간에 방문하면 예수님의 수난을 더욱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천호성지 사무실에서는 십자가의 길 기도문이 담긴 소책자를 구할 수 있으니, 순례 전에 준비하시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머물고 싶은 성지, 천호성지에서의 하루를 마치며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할 무렵, 피정의 집과 봉안경당도 둘러보았습니다. 1987년 전주교구 자치교구 설정 5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된 피정의 집은 많은 순례자들에게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었고, 봉안경당은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안식처로서 조용한 위로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천호성지를 나오며 문득 뒤돌아보니, 석양에 물든 성당과 순교자 묘역이 더욱 성스럽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곳에서 만난 신앙의 역사와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은 천호성지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닌,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들을 되새기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종교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참된 신념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용기와 사랑.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길 124번지에 위치한 천호성지. 첩첩산중에 숨겨진 이 작은 신앙의 보물섬에서 여러분도 특별한 영감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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