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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베들의 시대』 완벽 가이드 | 혐오의 구조를 파헤친 화제의 사회학 연구서 완전 분석

모지완주: 느리게 완주해부러 2025. 8. 2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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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 저 『보통 일베들의 시대』 완전 분석. 일베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해부한 화제작의 저자 소개부터 핵심 내용, 독자 평가까지 한번에 확인하세요.

안녕하세요, 완주에서 뭐 하지? 모지완주입니다.

 

오늘은 온라인 혐오 문화를 학술적으로 분석한 화제의 도서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일베라는 특정 사이트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스며든 혐오의 정동능력주의 문화를 날카롭게 분석한 중요한 연구서입니다.

 

저자 김학준, 온라인 문화 연구의 권위자

김학준은 누구인가?

김학준(1984년생)은 대한민국의 사회학 연구자로, 온라인 혐오 현상과 인터넷 문화 분석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그의 독특한 배경은 "유니텔부터 프리챌, 디시인사이드, 인스타그램을 거친 인터넷 죽돌이 출신"이라는 점인데, 이는 온라인 문화에 대한 내부자적 시각과 학술적 분석 능력을 동시에 갖춘 희귀한 연구자임을 의미합니다.

주요 경력과 연구 배경

  •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 (2014년)
  • 석사논문: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 ㈜아르스프락시아 미디어분석팀장
  • 서울시청 빅데이터담당관 데이터 분석 요원
  • 현재 LG CNS 근무

김학준의 연구는 단순한 이론적 접근을 넘어, 실제 데이터 분석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증적 연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 핵심 분석

책의 탄생 배경

이 책은 저자가 2014년 발표한 석사논문을 8년 후 확장하여 단행본으로 발전시킨 작품입니다. 당시 석사논문은 일베 현상을 학술적으로 분석한 선구적 연구로 화제를 모았고, 이후 축적된 데이터와 심층적 분석을 통해 완성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연구 방법론의 특별함

『보통 일베들의 시대』의 가장 큰 강점은 철저한 실증 연구입니다:

  • 양적 연구: 2011~2020년 일베 게시물 81만 건 전수 분석
  • 질적 연구: 일베 이용자 10명 심층 인터뷰
  • 시계열 분석: 정치적 사건들과 일베 활동의 상관관계 분석

이런 방법론적 엄밀함은 혐오 현상을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핵심 개념: "평범함을 갈구하는 시대"

책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일베 이용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평범함'이라는 분석입니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능력주의와 파편화의 결과물로서, 각자도생의 가혹한 체제 속에서 '평범하고 소박한 꿈'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이 혐오를 만들어낸다"

이는 혐오를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차가운 열광"이라는 혁신적 개념

김학준이 제시한 "차가운 열광"은 일베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이는 연대를 만들어내지 않는 열광, 즉 집단적으로 흥분하지만 실제로는 개별화되고 도피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온라인 현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정치적 동원과 온라인 문화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도 유용합니다.

💡 지금 바로 읽어야 할 이유: 일베는 사라졌지만, 일베적인 것들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더욱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의 정치와 문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독자들의 생생한 반응과 평가

학계와 언론의 호평

이 책은 출간 후 다양한 언론과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준석을 잘 다듬어지고 제도화된 일베"라고 평가한 부분은 일베 현상이 현실 정치로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예리한 분석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일반 독자들의 솔직한 후기

읽기 어렵지만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통계와 분석에 대한 내용이 많아 읽는 내내 나를 괴롭게 했다. 하지만 '저런 논리를 가진 사람들과 마주하며 같이 살아가야 하는 건가?'라는 허탈함을 느끼면서도,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책"

교육 현장에서의 활용

역사 교사들이 '혐오의 자유' 이해를 위한 추천 도서로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다음 장들이 실천적 이해에 유용하다고 평가됩니다:

  • 1장: 인터넷 문화사
  • 2장: 데이터 분석
  • 4장: 평범한 일베 인터뷰

왜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시의적절성: "일베는 끝났지만 일베적인 것은 확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뒤늦게 웸 일베?"라고 묻지만, 저자는 명확하게 반박합니다. 연구 대상으로서 일베의 가치는 이제 하락했지만, 정작 사회 전반에서 '일베적인 것'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입니다.

구조적 접근: 개인 비난을 넘어서

"일베 이용자 개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증상이지, 원인도 원점도 아니다. 한국 산업화의 원천은 혐오였으며, 혐오자들은 국가가 그 발전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체계적으로 생산해낸 도덕적 정치적 산출물이다."

이런 구조적 접근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추천 대상: 온라인 혐오 현상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분, 사회학·미디어학·정치학 전공자,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고 싶은 독자

비판적 관점과 보완점

학술적 비판

2014년 석사논문에 대한 비평에서는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차가운 열광' 개념과 대중동원 가능성 포착의 한계가 지적되었습니다. 아도르노의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용적 한계

평론에서는 책이 '혐오의 자유'가 어떻게 제도정치와 결합했는지를 잘 분석했지만, 극단화로의 도약 설명이 다소 아쉽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도서와 자료

보완 독서 추천

  • 김학준의 2014년 석사논문 관련 비평을 곁들이면 '차가운 열광' 개념의 장단점을 보완적으로 검토할 수 있습니다
  • 언론 인터뷰를 통해 81만 건 분석에서 드러난 이슈별 파동과 유머 자원의 의미를 실제 사례와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서 팁과 주목할 점

독서 난이도: 통계와 텍스트 마이닝이 포함되어 이론·방법론 난이도가 중간 이상이지만, 장별 구성과 사례가 충분해 따라가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사전 준비: 2011~2020년 주요 정치적 사건들(박근혜 당선/탄핵, 조국 사태, 강남역 살인사건, 곰탕집 사건 등)을 미리 타임라인으로 정리해두면 도움이 됩니다.

💭 비판적 읽기 포인트: 혐오 정동이 어떻게 조직화·동원으로 이어지는가? '웃음'이라는 자원이 플랫폼·알고리즘 변화 속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가?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이 책은 어떤 독자에게 적합한가요?

A1. 온라인 혐오 현상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부터 사회학·미디어학 전공자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Q2. 일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나요?

A2. 네, 책에서 충분한 배경 설명과 인터넷 문화사를 다루고 있어 사전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Q3. 통계와 데이터 분석 부분이 어렵지 않나요?

A3. 전문적인 통계 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일부 방법론 부분은 집중해서 읽어야 합니다.

Q4.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4. 혐오를 개인의 도덕적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하며, '평범함을 갈구하는 시대'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Q5. 실제 정치나 사회 현상 이해에 도움이 되나요?

A5. 네, 특히 현재의 정치 문화와 온라인 여론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마무리: 불편하지만 필요한 진실

사회학자 엄기호의 추천사처럼, 이 책을 '안전'하게 타자화된 일베라는 '작은' 서클에 대한 이야기로 읽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문제화된 집단'을 문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치와 그에 따른 사회적 삶의 변형이기 때문입니다.

혐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며, 그들의 논리와 정면으로 싸워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 지금 바로 행동하세요: 온라인 혐오와 능력주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다면,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통해 그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보세요. 단순한 비난을 넘어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밑출치며 읽은 부분

  • 농담의 사회적·권력적 속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관점 분석
  • "코미디를 보고 웃는 사람과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의 차이" - 권력 관계의 체감
  • 넷페미의 문제 제기와 '프로 불편러', 'PC충'에 대한 경멸
  • 《개그콘서트》의 우월적 웃음과 "상호 모멸의 메커니즘" 분석
  • 일베 유입자 감소와 온라인 보수담론의 유튜브 중심 재편
  • 2020년 하반기 이후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과 일베 '특장점' 소멸
  • 일베 역사상 최고 추천 게시물: "약혐) 정회원 인증한다" (장애인 관련)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론과 사회적 무시의 세 차원
  • 일베의 '타자' 호명과 무시 방식 (여성, 호남 등)
  • 식민지 조선 신여성 담론과 현재 여성혐오의 연관성
  • 일본 여성 vs 한국 여성 비교를 통한 '김치녀' 담론
  • 화전양면전술 등 군대용어 사용과 반공 이데올로기
  • 종북에 대한 혐오의 본질: '나대지 말라'는 갈등 자체에 대한

 

  •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보편증상’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일베라는 것이다. 박권일의 주장은 일베를 악마화하는 ‘과대평가’나 루저로 격하하는 입장에서 벗어난 최초의 논의 중 하나라는 데 의미
  • 농담은 “쾌락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활동 중에서 가장 사회적”이라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웃음은 화자와 청자 간의 공감대, 나아가 이해관계가 동일할 때에야 터진다는 관계적·권력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농담의 화용적話用的 성격을 알고 있기에, 누구도 탈모인 앞에서 대머리에 관한 농담을 꺼내지 않는다. 탈모인 스스로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따라서 “코미디를 보고 웃는 사람과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의 차이는 …… 권력의 부재를 체감하는 사람과 …… 현존을 체감하는 사람의 차이”2라는 진술은 설득력을 갖는다. 온라인 유머 공동체가 일종의 호모소셜을 이룬다 할 때, 웃음의 배후에 흐르는 젠더권력의 현존을 지적한 ‘넷페미’들의 강력한 문제 제기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웃음의 컨센서스consensus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했다.* 농담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이들은 흔히 ‘프로 불편러’라 일컬어졌고, 일베를 포함한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 ‘불편러’들을 ‘PC충’이라 부르며 경멸했다.
  • 〈개그콘서트〉에서 기획한 웃음의 상당수가 우월적 웃음, 즉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짓는 비웃음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표상되는 한국적 웃음 모델은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비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상호 모멸의 메커니즘”5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 1차적으로는 일베 유입자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인 한편, 온라인에서의 보수담론 생성과 확산이 유튜브 중심으로 재편되며 채널의 다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의 시각으로 정치 이슈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더 이상 굳이 일베에 접속할 필요가 없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하반기 이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 일로에 빠지자 거의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때 ‘일베’라 낙인찍혔을 법한 논의들이 ‘보편의’ 논의로 재승인을 받으며 일베의 ‘특장점’이 사라져버렸다.
  • 일베 역사상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게시물은 일베 역사상 가장 많은 댓글을 받은 게시물과 같다. “약혐) 정회원 인증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 글은 일베에서 여러 활동을 했던 이용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후 재활 중임을 알리는 게시물이었다. 제목의 ‘정회원’이란 장애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글을 본 많은 일베 이용자들은 글쓴이에게 ‘동정’을 표하며 ‘쾌차’를 빌었다. 또한 이 글이 ‘레전드’가 될 것이 명백해 보였는지 많은 이용자들이 ‘막플(마지막 댓글)’ 경쟁을 향해 내달렸다. 이 글은 총 4만 2,000여 개의 추천을 받고 1만 8,0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마지막으로 달린 댓글의 추천수는 4,409개다).
  • 독일의 사회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저서 《인정투쟁》을 통해 인정의 세 가지 차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무시나 모욕 역시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인정이 신체적 불가침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폭력으로 빼앗는 실제적 학대”1이다. 호네트는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모욕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권리의 박탈로, 이는 “한 개인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동등한 정도의 도덕적 판단력을 인정”2받지 못함으로써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해 그 개인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동등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을 주는 무시이다. 마지막으로는 개인이나 집단이 공동으로 믿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부정, 다시 말해 문화적 평가절하이다.
  • 일베는 여성, 호남 등의 ‘타자’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부정하고, 분단 체제에 기대어 여타 사회적 가치를 부정하는 무시를 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례 1~4는 일베가 ‘타자’들을 어떻게 호명하고 무시하는지를 드러낸다.
  •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 담론을 분석하며 근대적 지향을 표명한 지식인들의 욕망과 정체성이 투영된 장소가 신여성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지식인 남성들에게는 물론이고 식민지 조선의 대중에게도 알려진 ‘모던걸’은 나혜석 등으로 특정되는 지식인 여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큰길에 나오는 모든 여자”3였으며, 그들의 외모나 지식은 “주체적인 사고의 발로”라기보다 “단순한 허영심”4에 찌든, “요컨대 유녀”5의 것으로 특정지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1930년대 초 《신여성》의 주요 필진이었던 남성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인식으로, 식민지 조선의 담론장에서 여성은 근본적으로 비주체적이고 의식이 없는 이들로 그려졌다. 여성을 “퇴폐와 타락, 자본주의적 상품화, 그리고 배금주의의 체현자라고 비판”하면서도 기실 여성에 대한 매혹됨의 눈길과 끊을 수 없는 엿보기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김수진은 주장한다.
  • 일본 여성들에게 더치페이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듣는 자세가 바르기에 “남자의 자신감을 키워”주며, ‘밀당’을 하지 않고 “남자에게 헌신”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도, 선물의 가치에 매달리지도 않으며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받은 것은 반드시 갚”는 ‘개념녀’인 데다, 남자가 연락을 못 하면 “다이죠부~ 하면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한다”.
  •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국 여성들은 이기적이고 의존적이며 계산적인 반면, 일본 여성들은 정서적으로 남성에게 위안을 주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한국 여성에 대한 이러한 불만은 ‘허영’ 혹은 ‘허세’에 대한 불만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성들의 허영은 SNS에 매달리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거니와, 별 ‘쓸데도 없는’ 명품 백에 ‘환장’하고 자기들끼리 비교하기에 바쁘지만 그것을 직접 구매할 경제적 능력은 없어서 남성을 ‘착취’한다는 논리다. 따라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일베에 올라온 수많은 “연애하다 헤어진 썰”은 “간도 쓸개도 다 빼 줬더니” “돈 많은 놈팡이”랑 “바람나서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처럼 친밀성을 요구하는 남성들의 ‘소박한’ 소망은 허세로 가득 찬 ‘김치녀’들의 ‘종특(종족 특성)’으로 인해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 된다. 글쓴이가 한국 여성에게 가진 가장 큰 불만 역시 여성들이 친밀성에의 요구를 좌절시킨다는 데 있고, 따라서 그 대안으로 일본 여성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 화전양면전술과 같은 군대용어의 사용은 일베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북한, 혹은 종북에 대한 일베 이용자들의 주장은 군대에서 군인들에게 실시하는 정훈교육과 상당한 유사점을 공유한다. 나폴레옹전쟁이 프랑스 ‘국민’의 형성 과정에서 ‘근대 시민교육’의 요람이 된 것처럼, 한국 역시 근대화 과정에서 기술과 거리가 멀었던 농촌 총각들을 군대를 통해 조직화된 산업 역군으로 재생산해냈다. 그뿐만 아니라 ‘국시’로서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주입되며 한국적 ‘시민됨’ 혹은 ‘주체’의 표상 또한 만들어냈다. 이러한 주체는 전시 상황인 조국의 발전을 위해 체제에 순응하며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말하자면 ‘가만히 있으라’를 요체로 하는 주체이다. 전시 상황에서 체제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은 이적 행위이며 비국민의 행태가 된다.
  • 종북(주의자)에 대한 일베 이용자들의 혐오는 그들이 ‘실제로’ 매국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는 차라리 ‘나대지 말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갈등 자체에 대한 혐오이다. 이들이 보기에 ‘종북’ 혹은 ‘좌파’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고 ‘계몽’하려는 오만한 ‘엘리트’들이다. 좌파는 그들 스스로의 지성과 도덕성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한다고 여겨지고, 이에 대한 반응은 반발감으로 귀결된다. 이는 일베 이용자들이 386 세대를 비난하는 논리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며, 능력주의로 인한 모멸감과도 공명하는 반응이다.
  • 일베 이용자들은 병역의무를 통해 국가의 피해자성을 계승하는 존재로 위치하게 된다.
  • 한 이용자는 대법원의 판결이나 5·18을 ‘성역화’하는 교과서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15년간 좌파 정권”이 만든 결과라고 분개하며 “역사라는 것은 정권 잡고, 힘 있는 놈이 입맛대로 고치는” 것이라는 불만을 토했다. 소급입법으로 법치주의의 원칙을 어기고 “다 끝난 사건을 다시 관 뚜껑 열어서 부관참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일베에서도 완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수정주의는 나름의 다양한 ‘근거’를 제공하며 기존의 관점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새로 취임하신 가카(박근혜)가 바꾸실 수도 있겠”다며 “바꾸는 건 몰라도 확실히 광주 사태에 대해서는 확실히 한번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이 사례 외에도 5·18의 ‘팩트’를 다룬다는 여러 게시물들의 댓글에서 ‘이런저런 의견이 많으니 다시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숙고’가 자주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촛불집회, 소급하면 거의 모든 집회와 시위에 대한 일베 이용자들의 거부감은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이들이 혐오하는 것은 ‘불법’ ‘폭력’ 집회이다. ‘신상 털기’와 ‘패드립’으로 악명 높은 일베에서 ‘합법’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사실은 다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을 논하면서도 그것이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의 영역이라 말하기 위해 끊임없이 근거를 찾아 나선다. 이 때문에 5·18을 ‘광주 사태’라고 칭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당대의 ‘법’이 무엇이었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갑론을박하는 것이다.
  •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은 여성의 ‘무지’가 그 원인이라는 식으로 정당화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 댓글과 같을 것이다. “무식한 년. 명불허전 김치년.” 여기에 해군을 없애자는 ‘가’의 극단적인 주장에 근거해 ‘종북좌빨’이라는 낙인을 추가하고 이러한 타자화는 “촛불”로 더욱 구체화되어 표현된다. “이러면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촛불좀비 하지. 시× 논리도 없고 대가리 생각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 되니 광우병 촛불좀비 되는 거야”라는 댓글은 그러한 표현의 대표적인 예다.
  • 좌파에 대한 지칭, 특히 ‘좌파 좀비’에서의 ‘좀비’가 ‘뇌 없이 맹목적으로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괴물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진보세력 역시 ‘무식하다’는 프레임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글쓴이에게 쏟아진 “논리적”이라는 찬사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확인한 일베적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다.
  • 수치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사이버공간에서 느낌표(!)나 물결표(~) 등의 문장부호 활용 행태는 글쓴이의 연령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사례 11의 경우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일베에서 통용되는 언어적 행태와 상당히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제목이 지나치게 길고(띄어쓰기 제외 34자), 소개하는 이에게 존칭(“그분”)을 붙였으며, 결정적으로 느낌표를 써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게시물의 글쓴이가 고령층일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며, 적지 않은 일베 이용자들 또한 그렇게 추측한 것으로 보인다.
  • 즉,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친목을 금지하는 오래된 문화가 일베에서도 발현되었다고 할 때, ‘다’에 대한 비난이 격렬해질 수 있었던 데는 ‘보빨러’에 대한 반감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일베에서의 여성혐오를 설명하는 또 다른 시각으로, 커뮤니티의 존속을 위협하는 여성들의 등장은 ‘보빨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논리다. 따라서 ‘다’를 비난하는 것은 기실 여성혐오와 다름없다. * 일베에서 쓰이는 ‘보빨’이란 말은 여성을 지나치게 옹호하거나 우대하는 행위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며, 이러한 태도의 남성들은 ‘보빨러’라 불린다.
  • 일베 특유의 사회방언은 랜들 콜린스Randall Collins가 말한 ‘경계선’으로서,10 일베와 일베 아닌 자를 구분할 수 있는 표지가 된다. 또한 일베 이용자들에게 맞춤법에 맞는 문장은 교육을 받았다는 최소한의 표지이며, 이는 온라인에서 각종 외계어 사용 등 어법에 맞지 않는 언어생활을 한다고 여겨지는 여성들과 자신들을 구별짓는 중요한 기호이다.
  • 혐오표현분류기를 활용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일베에서의 주요 혐오 대상이 여성, 진보좌파, 북한, 호남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일베에서 나타나는 혐오의 ‘논리’가 ‘무임승차’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 또한 확인했다. 이제는 이러한 혐오표현을 실제로 구사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봄으로써 데이터로 드러난 혐오라는 증상의 원인을 살펴볼 차례다.
  •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불안은 결국 인간관계 자체에 대한 불안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불안은 “자신이 전라도 출신이기 때문에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절대적 위기감”12을 느껴 호남발 지역주의가 탄생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즉, 절대적 위기를 경험함으로써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 이것이 같은 지역민들 간의 연대와 단합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수시로 맞닥뜨리는 위기와 배신감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자연상태’를 일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불신은 보상받지 못하는 자신의 ‘친절’에 대한 불안인 동시에, 탈감정적 친절이 본질적으로 동반하는 위선에 대한 피로가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이 맥락에서 일베 이용자들과 여성 사이의 전선은 가시화된다. ‘남성’ 일베 이용자들은 후기근대적 불안과 순응의 피로를 로맨틱한 이상적 사랑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하지만 ‘김치녀’라는 한국 여성 일반은 사랑의 이상을 물질화하고, 결혼을 통한 안정의 목표를 ‘평등’의 이름으로 파괴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남성에게 의존하고, 병역의무로 대표되는 공동체적 책임을 회피하며, 일상생활에는 전혀 필요 없는 물건(명품백)에 집착한다. 남성들(특히 일베 이용자들)은 이러한 여성들의 통제 불가능성을 강하게 성토하는데, 이들의 인식에서 ‘김치녀’에 대한 공감대는 정치적 지향과 무관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 현 상황을 내면화하고 순응하는 전략이 세대별로 다른 데서 오는 차이 때문이다. 노동빈민의 불안과 공포가 종종 저항과 비행위의 방식을 취하는 반면,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했거나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일베 이용자들이 속한 2010년대의 청년들은 진입 자체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학자 시어도어 켐퍼Theodore Kemper의 지적처럼, 사람들은 불안이 분노로 외사화extrojected될 때 저항 행위를 할 수 있는 반면, 수치심이나 무력감 등으로 내사화introjected될 때는 순응이라는 행위 전략을 선택한다. 공포라는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순응과 노력의 이름으로 자기계발(혹은 자기최면)에 몰두하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현재의 생활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낙관,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태도가 뒷받침되면 순응은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노력이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이 ‘그 정도’라면 거기서 더 이상의 ‘과욕’을 부리지 않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이 박정희 정부 말기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6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후기근대’로 총칭되는 시기로 환원되지 않는다. 특히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인터뷰한 이들이 청년 세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체화한 것처럼 보이는 불안과 공포는 취업과 생존에 직면한 이들이 느끼는 구체적인 감정이라기보다 차라리 유예된 감정이며, 현재와 미래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상像이라고 할 수 있다. 일베 이용자들이 보이는 불안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따른 불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두 번째는 그러한 경제적 위기와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친밀성의 영역이 붕괴되었다고 느끼는 데서 기인한 불안이다.
  • 하지만 결혼도 섹스도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일베 이용자들이 봉착한 문제는 관계의 대상들이 타락한 존재, 즉 ‘김치녀’라는 데 있다. 윤보라가 옳게 지적한 것처럼, ‘김치녀’라는 말은 ‘일부’ 여성이 아닌 한국 여성 ‘전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일베에서 “한국 여성들은 전부 못생기고, 공중도덕 관념과 책임감이 없고, 이기적이며, 무조건 돈 많은 남자와 명품만 밝히는 속물, 은혜를 모르는 후안무치, 성적으로 방종한 ‘걸레년’과 ‘낙태충’이다”.9 이는 결혼 토픽이 암시하는 일베의 이상적 여성상과 대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 ‘김치녀’는 도덕적이며 책임감이 투철한 이타적인 ‘소수의’ 여성이 진정성 있는 ‘나’에게 헌신적인 사랑과 섹스를 제공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일을 방해한다고 여겨진다. 이 단란한 가족 로망스를 방해하는 김치녀의 극의가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할 때, 이들 페미니스트는 ‘가슴’도 작은 주제에 ‘낙태’나 하는 방종한 이들이고, 각종 ‘사건’ 사고나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이자, 무엇보다 정치적 좌파로서 일베의 숙적이 된다. 이러한 키워드가 모두 포함되어 독립적인 페미니즘 토픽(5,443건)을 이룬다. 또한 ‘지하철’의 임산부 지정석과 ‘김여사’를 위한 여성 전용 주차공간 등의 여성 특권 토픽은 페미니즘의 요구를 각하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역차별’을 고발하는 사례로 끊임없이 소환된다.
  • 어딘지 행동이나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은 ‘전라도 출신’이더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를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본다면, 특히 ‘경상도’가 고향 토픽의 키워드에서 상위권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일베에서 나타나는 지역 혐오표현이 호남에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호남을 포함한 지방 전체를 낙후되고 닫힌 사회, 즉 ‘비정상적’인 사회로 규정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즉, 서울을 ‘정상적’인 상태로 상정하고 욕망하는 만큼 지방을 무시하고 그곳에 사는 이들을 ‘루저’로 격하한다. 이런 조건에서 고향은 탈출해야 하는 또 다른 지옥일 뿐 애향심이 자리잡을 곳은 없다. 수도권 인근에 거주하는 이들은 지방을 식민화 또는 타자화하고, 그 외 지역에 사는 이들은 수도권을 선망하거나 그곳이 아니면 교육이나 취업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여긴다. 이는 근본적으로 서울에 모든 자원이 집중되어 나타난 지역 불균형 문제다. 전라도는 그 탈출에의 욕망 또는 필요성이 5·18 수정주의와 맞물리며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고 인식될 뿐이다.
  • 분노는 어디까지나 정의로운 것이되 이 정의로움은 도덕적 연대에 준거한다. 뒤르켐이 보기에 어떠한 범죄는 해당 사회의 집합감정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이때 감정은 “피상적으로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감정이요 어떤 성향”이다.13 따라서 형벌이 인간의 열정, 특히 복수의 열정을 만족시키는 것인 한 그것은 분노와 직결된다. 범죄자의 죄는 단순히 피해자 및 그 가족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침범한 것은 (성스러운) 공적 도덕이며, 이에 사람들은 모여서 피해자의 분노를 공유하며 함께 분노한다. 즉, 이때의 분노는 공적 분노이며 범죄자는 이윽고 “속죄”14의 대상이 된다. 이에 공적인 분노는 속죄의례를 통해 성스러운 것의 회복을 선언하며, 그 의례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집합흥분 속으로 밀어 넣는다. “대규모 집회에서 발생한 감정이 폭력성을 가질 수 있게 되”15는 것도 이 때문이며, 이처럼 폭력조차 “집단의 연대구조와 그들의 감정적 연계를 반영하는 도덕”16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속죄의 명목으로 가해진 고통은 이러한 공적인 분노의 표현, 즉 만장일치의 구체적인 증거일 뿐이다”.17 한편, 잭 바바렛Jack Barbalet은 주체가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경험하는 감정을 분노로 규정한다.18 특히 사회적 관계 속에서 행위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적인 힘에 의해 자신의 가치와 기회가 침해받았을 때 분노를 경험한다. 켐퍼와 콜린스는 사회적 관계의 핵심 질서를 권력과 지위의 관계로 설정하고, 타인에 의해 지위 상실이 발생할 경우 사람들이 분노와 증오를 느낀다고 주장하며 분노는 개인적 이유에서 발생하는 우울과 달리 투쟁의 에너지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 “좌파와 종북”의 개념이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좌파인데 북한은 싫다”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
  • 사회적 불안에 대한 이들의 염려는 “신변의 위험” 수준으로 격하되며, 사회적 소수자들의 사회제도적 안전망에 대한 요구는 열패자들의 하소연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은 매우 쉽게 정치적 보수화와 연결되는데,8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신뢰가 없고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되는 상황에서 불안은 그 누구도 아닌 개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개인화된 현실을 그대로 순응하는 상황에서 사회를 향한 의문을 가지기는 불가능하며, 이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불안의 해소 또한 사적 친밀성의 영역에서 위로받고 해결하려는 태도로 나아간다. 즉, 새로운 가족주의가 부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베가 사회적 문제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지방선거 및 교육감선거 국면에서 유력 후보자들이 ‘가족’ 문제로 낙선한 것이나, 대통령 탄핵의 빌미가 된 최서원 씨 가족 문제, 조국 사태 등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것은 단순히 ‘가부장적 전통의 귀환’도 아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불안의 사사화 속에서 친밀성이 공적 영역으로 소환되었을 때, 사생활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 공론장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친밀성의 영역이 얼마나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그가 보기에 5·18 민주유공자들은 여타의 “국가유공자”에 비해 과도하게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 더욱이 “자기 권리”를 “얘기하고” 다니며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 아니 “악용”한다는 점에서 5·18 민주유공자들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무임승차자가 된다. E는 “홍어라고 까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무조건적으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고 체제를 흔들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베 이용자들은 전라도 혹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혐오나 분노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거의 언제나 정치적 이슈를 언급하며 에둘러 비난했다. 한편, 모든 연구참여자는 5·18의 정당성에 대해 의
  • ‘고인드립’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부정적인 평가로 ‘마음 놓고’ 일베를 할 수 없게 되는 불편함 때문에 ‘패륜적’ 드립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여성과 호남에 대한 혐오나 차별을 부인하던 이들조차 북한과 좌파에 대한 혐오는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일베에서 북한은 “주적”이므로 “이적 행위”를 하는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적대감은 그 어떤 타자에 대한 것보다 선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참여자들은 공포의 ‘몸통’인 북한보다도 그들에게 봉사하는, 혹은 선동당하는 ‘좌좀’에 대한 분노를 더 많이 드러냈다.
  • 의구심을 드러낼지언정 명시적으로 ‘폭동’이라고 발언하지는 않았다.
  • 일베 이용자들의 응어리진 분노의 또 다른 원인은 표현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자체에 있다. 일베에서 ‘민주화’는 ‘비추천’ 또는 ‘후진성’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는데, 이처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비난하는 역설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 ‘선동’이라는 말 자체다. 일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선동에 대한 증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베 특유의 ‘팩트’중심주의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다시는 선동당하지 않겠다”는 일베 이용자들의 단호한 의지는 일베에서 나타나는 얼마 되지 않는 일관성 중 하나이며, 이는 자신의 이성(그리고 일베가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 말고는 어떠한 것에도 영향받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처럼 ‘단호한 의지’는 엄기호가 《단속사회》를 통해 지적한 내용과 정확히 공명한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자기주장을 하거나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행위 자체가 논란”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즉, 일베의 인식에서 ‘홍어’와 ‘김치녀’ 그리고 ‘좌빨’과 같은 타자들은 “그저 ‘입 닥치고’ ‘찌그러져’ 살아야 한다”.22 이로써 타인의 인정투쟁은 전면적으로 부정된다.
  • 이러한 불만은 전문가와 기술관료들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현대인의 일면을 보여주는 한편, 정보화로 인해 수많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사실 자체가 가지고 온 불편함이다. 즉, 누구나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지식의 기준이 사라져 무엇이 과연 ‘진짜’ 지식인가에 대한 대답이 모호해진다. F가 말하는 ‘나댄다’는 것은 종종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담론적 행태에 대한 짜증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또한 겉으로 친절하고 불만을 내색하지 않는 타자지향적 주체들에게 ‘나대는’ 행위는 (그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지적 무시로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과도한 감정 소모를 요구하는 무례함으로도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기서 생기는 모순은 다른 연구참여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멍청한” 주장 또한 그대로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는 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대는’ 이들에 대한 일베 이용자들의 분노는 상당했다. ‘나댄다’에 대한 F의 말과 같이 일베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은 촛불집회를 포함한 대중운동이었는데, 또 다른 연구참여자 G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울분을 표현했다. 진짜, 아니, 페이스북 [같은] SNS 보면 무슨, 아니 중학생 고등학생, 이제 스무살 된 제가 뭘 알겠어요. 제가 세상에 대해서 뭘 알고, 제가 민영화에 대해서 뭘 알고, 알면 얼마나 알고. 그거에 대해서 ‘아 나 오늘 시위 갔다 왔다’라고 글 싸지르니까 ‘아, 오빠 멋있어’ 이런 새끼들도 있고 ‘형, 진짜 멋있어요 저도 다음에 갈게요’ [그런 사람도 있는데] 무슨 이거는, 그러니까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져서 생기는 대표적인 잘못된 예다. 그리고 [그런 식의 행동이] 선동이 되는 거죠. (G) G의 이야기에서 신념을 가진 “무식한 사람”의 예로 여성이 먼저 언급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 감정장, 즉 정신건강과 감정건강이 1차상품으로 유통되는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감정장이란 사회생활의 한 영역, 곧 국가, 학계, 각종 문화산업, 국가와 대학이 인가한 전문가 집단, 대규모 의약 및 대중문화 시장 등이 이리저리 교차함으로써 창출되는 모종의 작용-담론 영역을 가리키며, 그 나름의 규칙과 대상과 경계를 갖고 있다.”27 감정장에서는 감정생활 또한 관리와 조절이 필요하며 건강의 이상에 따라서 규제해야 한다는 탈감정주의적 인식이 공유된다. 바꿔 말하면 감정장에서 감정은 병리적인 것, 혹은 아동기의 트라우마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분노 또한 상담을 통해 치료해야 할 감정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분노에 대한 경악28이라는 현대 감정장의 지배적 분위기야말로 일베를 문제적 공간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즉, 오늘날 감정장에서 ‘사랑’이 중요해진 만큼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은 누구보다 시급하게 감정 관리 기술을 전수받고 ‘치료’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문명화되지 못한 ‘미개인’이라고 손가락질받거나, 감정자본29이 부족한 하층계급임을 자임하는 것 외에 어떠한 의미도 없게 되었다. 요컨대 오늘날 주된 감정은 연인들 사이의 미시적이면서도 로맨틱한 사랑이지, 계급 사이의 거시적이면서도 폭발적인 연대를 이끌어내는 분노가 아니다. 따라서 공공의 감정인 분노는 다른 모든 공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적인 감정에 잠식당해 사실상 버려지고 최대한 은폐해야 할 감정이 되었다. 공공의 믿음이라는 든든한 배경과 정당성을 가졌던 분노는 친밀성이 지배하는 사적인 세계로부터30 퇴출된 것이다. 친밀성의 영역이 공적 연대를 배태하지 못하는 원인은 공적 분노의 퇴출에 있으며, 공적 분노의 퇴출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용인하며 모든 게 각자의 자유임을 인정하는 타자지향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베가 뿜는 감정을 기억한다면 ‘퇴출’된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것이 새롭게 찾은 터가 사이버공간임을 알 수 있다.
  •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태도는 ‘응어리진 분노’라 할 수 있다.23 응어리진 분노는 타자지향적 성격을 가진 현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분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리스먼은 특히 미국 대도시의 상층 중간계급의 성격 유형과 유사한 이 성격이 현대 사회의 변화와 함께 국제적인 추세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타자지향적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타인지향적인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점은 그들의 동시대인이 개인에게 있어서의 지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가 직접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그가 친구나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러한 원천은 물론 생활지침으로서 그것에 의존하는 습성이 어릴 때에 심어진다는 의미에서 ‘내면화’되어 있다. 타인지향적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는 그 지침과 함께 바뀐다. 일생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추구하는 과정 자체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는 신호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과정뿐이다.24 학점에서 영어점수, 공모전에 이르기까지 스펙을 쌓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자신들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과는 달리 성실하고 건실한 시민들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능력에 대한 행복은 보장을 해주는 사회”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 못살 사회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들의 노력이 헛된 것일 리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무작정 집회와 시위를 하는 “세력”은 정의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욕심”을 위해 사람들을 선동하며 대중의 불만과 불안을 조장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떼”를 쓰는 무임승차자들일 뿐이다. 즉, 이들 “종북”과 “좌좀”들은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시위한 것밖에 한 일이 없는데도 그들이 응당 감수해야 할 결과(예컨대 실업) 이상의 보상과 지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화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 일베 이용자들이 ‘타자’로 지정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속성이란 결국 ‘이해할 수 없고’ ‘언제 뒤통수칠지 모르는’ 이중성이다. 환언하면 일베의 적으로 규정된 이들은 누구보다 탈감정적 자기절제에 능한 이들이며, 이는 일베 이용자들 자신이 일상에서 언제나 행하고 있는 감정노동에 대한 피로와 수치심을 타자에게 투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 수치심은 리처드 H. 스미스Richard H. Smith나 시어도어 켐퍼, 토머스 셰프Thomas Scheff 등이 말한 것처럼 사회적 순응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32 수치심은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인바, 도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스미스는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공정한 방관자spectator의 눈으로 스스로의 행위를 성찰하고, 그것이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자부심을 느끼고 그렇지 못하면 수치심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한편, 셰프가 주장한 것처럼 수치심은 겉으로 드러나거나 행위자가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즉 “수치심의 수치심은 수치심을 은폐하고 이는 수치심을 저가시적low-visibility이게 하고 쉽게 무시”33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위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정할 수 있으며, 자주 합리화를 시도하게 된다. 켐퍼는 수치심을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외사화된 수치로, 이는 타인을 향한 화와 적대감의 형태로 나타나는 수치심이다. 외사화된 수치심은 타인이 자신보다 과도하게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생기는 감정으로 계급 저항과 같은 행위로 표출될 수 있다. 이에 반대되는 내사화된 수치심은 스스로의 무능에서 비롯되는 수치심으로서 거북함이나 창피함의 형태로 나타나며 순응과 회피의 행위로 이어진다.34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현대인들의 성격, 다시 말해 현대인의 타자지향성이 수치심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 다분히 박정희와 같은 개발독재의 아이콘을 지향하고 있는 그의 ‘지도자’는 시대정신을 담지한 초인의 모습과 같다. 지도자의 선의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국민소득’ 증대라는 절대가치가 실현될 때까지 ‘국민’들은 지도자 아래 합심하여 “엄하게[애먼] 딴소리를 하거나 개소리를” 하지 말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A가 특별히 ‘독재 친화’적인 연구참여자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앞서와 같은 생각은 A라는 개인의 특성이라기보다 오늘날 ‘탈정치화’된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환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선의와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일베 이용자들과 2012년 대선 당시 ‘새 정치’ 신드롬을 몰고 온 안철수 후보에게 열광하던 청년들 사이의 구별점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 이런 상황에서 남는 것은 ‘죽창’을 드는 것뿐이다. 동학농민운동과 그 당시의 파국을 이해한다면 오늘날 청년들의 ‘무기’로 죽창보다 더 적절한 것이 있을까. 이 지옥불 반도 헬조선에서 살 수도 탈출할 수도 없다면,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죽창으로 ‘너와 내가 서로 찔러’ 이 세상을 뜨는 파국이 그나마 ‘가능한’ 미래다. 하지만 “죽창을 달라”고 하는 이들의 기묘한 피동성, 즉 삶을 돌파하기 위해 죽창을 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끝장나기 위해 죽창을 드는 파국적 상상력은 죽창을 구할 방안이 없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죽창을 구하기 위해 대나무밭에 갈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 서동진이 지적한 자기계발하는 주체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기보다는 ‘1인 기업’으로, 착취당하는 존재보다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경영자)로 위치지으며 자기계발 논리를 내면화한다. 신자유주의가 자기경영과 기업가적 자아 개념을 통해 개인의 동기화 수준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김종엽이 옳게 지적했듯 “개인이 자신을 기업으로 사고하게 되면 노동자라는 범주가 해체”되고 “스스로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실업이라는 범주도 사라”지며 “개인의 삶은 기업 자체인 자신에 대한 경영적 실천으로 환원”35된다. 자기계발 담론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주체의 생산을 주체 ‘스스로’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재생산 메커니즘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서동진은 자기계발 담론이 주체에게 수치를 권한다거나 인생을 ‘도구적’으로 대하라는 가르침을 설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를 되찾으라”36고 요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자유주의 확산 이후 열풍처럼 불어닥친 자기계발에의 의지는 수동적인 피고용자, 다시 말해 “부품과 나사라는 생각이 골수까지 박혀 있는”37 삶에서 탈피하여 자기 자신을 새롭게 문제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체제에의 구속을 의미한다. 서동진의 지적처럼 현대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은 “사회와 자신의 관계를 의식하고 또 끊임없이 주의 깊게 조정하는 주체”이며, “사회적 삶을 자기 내부에 각인”38시킴으로써 자발적으로, 자유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체제에 구속시킨다.
  • 일베 이용자들이 꿈꾸는 지도자의 페르소나는 체제 반대파를 ‘속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결단력’의 보유자다. H와 같은 일베 이용자들의 말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극우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들의 체제 순응성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혼돈’이라고 여기는 문제를 ‘타개’할 실천적 함의를 가지지는 못한다. 체제에 반기를 들면 ‘사회가 결딴난다’고 보는 이들의 시각에 따르면, 박정희 ‘소장’의 5·16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12·12도 ‘구국의 결단’이었으며 “결과론적으로 지금 보면 맞는” 행동이었을 따름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들의 인식에서 6월항쟁과 5·18은 그저 사후적으로 성공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나뉠 뿐이다.
  • H의 순응은 “설령 말이 안 되는” 악법이라 하더라도 “따르지 않으면은 사회가 …… 무너진다”는 말처럼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규정을 어긋나지 않는 게 일단 중요”하다는 이러한 생각을 고려한다면 집회나 시위를 “나라가 절단이” 날 수도 있는 중대한 “혼란”을 가져오는 행위로 여기며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A와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개발독재에 대한 강한 긍정을 보였던 그에게 ‘일베를 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민주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그런데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저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왔고, 따라서 저희는 거기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 어느 정도 국민들이 먹고살 만하니까 이제 독재 정권 물러나라고 투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이 됐고, 그러한 발판 아래에서 80년대가, 386 세대가 투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에 그런 투쟁을 한 거라고 봐요. 그리고 독재하는 기간에는 일베 하고 디시 하고 오유 하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먹고살기 바빠가지고 일하기 바쁘지.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한 것이고. 그리고 만약에 아직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3,000달러 이하 못사는 나라다, 그럼 저는 뭐 개발독재가 맞다고 봐요. 그리고 그동안은 열심히 일해야죠, 지도자의 비전을 따라서. 그리고 그동안에 사회에 불만을 가진다거나, 엄하게[애먼] 딴소리를 하거나 개소리를 하면은 가차 없이 이제, 잡아들여야죠.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인 거죠. (A) 많은 일베 이용자들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절대 악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의 반대편에 ‘지도자’가 있다는 것이다
  • 경로의 원전原典은 다름 아닌 부모, 특히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터뷰 내내 거듭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밝힌 E는 자신의 아버지를 “미아리 판자촌”'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명문대에 가서 할머니와 고모를 포함한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자신의 손으로 사업을 일구며 “벤츠”를 몰 정도로 성공한 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E의 아버지는 산업화 시대의 전형적인 성공 서사를 온몸으로 구현한 이다. 이러한 아버지에게서 E는 “맞벌이를 할 건지 말 건지 상관없이 …… 가정을 지탱할 수 있는 금전적인 바탕”이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스스로 전문직에 종사할 정도의 능력이 없다고 느끼는 E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토대로서 “안정적”인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에 따라 E는 “좀 창의적이지 않고 좀 사회 틀에 맞춰가야 하지만 어쨌든 …… 그냥 일반적인 경영[학과] 나와서 준비하고 공부하고 스펙 쌓고” 하는 자기경영에 돌입한다. 연구참여자들에게서 보이듯이 이들은 ‘자기경영’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동시에 그러한 대세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비난한다. 이 새로운 무능과 구속에의 집착은 자유의 이름으로 생애경로를 획일화한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진정한 힘이며, 이는 유동적 근대의 ‘유동화’ 원리가 사람들을 공포로 경직시킴으로써 상상력과 사유의 능력 자체를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자조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루저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청년실업 지표가 나날이 악화되며 교육도 취업도 포기한 니트족이 증가하는 최근의 경제 상황에서 자신이 점점 쓸모없어지고 있다는 ‘잉여’로움의 ‘느낌적인 느낌’이 확산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리고 동시에 ‘죽창’도 ‘짱돌’도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제 기능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체제가 뒤집힐 빈틈은 보이지 않고, 대안이 될 수 있는 정당도 체제도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웃는 것뿐이다. 안상욱의 지적대로 “루저문화에서 나타나는 유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조롱의 대상으로 하며 화해가 아닌 파국적 결말을 맞는다”.40 마치 죽창을 들고 기관총 앞에 선 농민들처럼.
  • ‘헬조선’은 국민이 ‘미개’하여 시민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대기업은 청년 채용에 소극적이어서 ‘살려야 살 수도 없고 죽을려야 죽을 수도 없는’ 총체적인 불가능성의 공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나타난 ‘꼰대’들은 청년들에게 ‘노오력’이 부족하다며 ‘지적질’을 한다. ‘내가 젋었을 땐 안 그랬는데’로 시작하는 그들의 어법은 ‘내가 해봐서 알아’ 혹은 ‘청년이여 짱돌을 들라’와 같은 방식이다. 취업 문제를 예로 들어본다면, 전자는 ‘눈높이를 낮추라’는 힐난이고 후자는 ‘혁명을 상상하라’는 강요다. 어느 모로 보나 이는 개개인의 각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보기에 ‘꼰대’들은 발전국가 시대에 태어나 산업사회의 ‘단물을 빨아먹은’ 운 좋은 ‘기득권’에 불과하다. 비록 인터뷰가 진행된 2013년엔 ‘헬조선’이나 ‘노오력’과 같은 신조어가 없었으나, C를 비롯한 연구참여자들이 ‘386 세대’(C의 말에 따르면 “부르주아 좌파”)에 가지고 있는 불만은 ‘꼰대’들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과 이어져 있다. 구조적·관계적으로 꽉 막힌 상황에서, 해방구는 헬조선으로부터의 ‘탈출’뿐이다. 그러나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뉜 철저한 계급구조하에서 유학이나 해외취업 같은 헬조선 탈출 또한 금수저들에게나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탈출만이 유일한 길이지만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스스로의 상황을 자조한다.
  • 실제로 대부분의 연구참여자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일베 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쁜 것마냥 매도당하고 그런거 보면 …… 많이 억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이상한 쪽으로만] 매도당하는 거 같아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이다. 연구참여자 중 일부는 시종일관 군대에서나 사용할 법한 ‘다나까’체의 극존칭을 쓰는가 하면, 자신의 복장이 “격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이러한 친절과 예의에 대한 인식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생각과 맞물려 속으로는 용인하지 않는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도 표면적으로나마 인정을 표하는 ‘관용’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에 혼란을 조장한다”며 질색하는 집회나 시위도 법이 보장하는 권리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행해도 상관없다. 정확히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시위하면] 교통 막 막히잖아요. 그럼 [시민들이] 피해 입는 거예요, [시위자들이] 피해 끼치는 거예요. 시위하는 건 좋은데 질서를 지켜라 이거죠.” 하지만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과 관용은 기실 대단히 표면적인 태도로, 타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데서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합성되고 꾸며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위선적인 형태의 호의”라고 할 수 있다.31
  • 고통 내러티브가 친밀성의 영역을 공적인 공간으로 끌어낸다면, 평범 내러티브는 그마저도 억압한다. 이제 고통을 들어달라고 ‘징징’대는 것은 스스로가 약자임을 자임하는 꼴에 불과하며, 이는 곧 자기경영에 실패한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가 된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연구참여자 E는 오늘날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이 학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을 특정하는 표상을 획득하는 의례로 전락한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흥미롭게도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서열의 대학보다 경영학과라는 전공을 우선해 서열이 더 낮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결정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취직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적이지 않고” “사회 틀에 맞춰가”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지 개인의 특출남이나 학벌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취업 전선에서 경영학과가 가지는 특장점, 즉 취업을 “준비하고 공부하고 스펙 쌓”기에 경영학과가 유리하다는 점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외엔 별다른 꿈이 없는 그가 높은 서열의 대학보다 경영학과라는 전공을 우선시한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 명징하게 직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그의 언어는 일베의 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성과 세상에 대한 인식 또한 일베에서의 베스트 댓글과 게시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그의 글은 그가 말한 것처럼 ‘회고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종이에 옮긴 일베 게시물이다. 그는 사소한 이유로 한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했고, 또한 사소하고 상투적인 말들로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며 흉악범 이미지를 중화(또는 물타기)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일베를 일베라고 규정할 수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곳곳에서 음울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장대호의 자기중심성은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자기방어 또는 정당화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다. 여기에 그가 피해자를 집요하게 ‘양아치’라고 지칭하는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자신은 ‘민폐’를 끼친 사람과의 갈등 끝에 살인을 저질렀을 뿐, 국가나 사회에는 “그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다”는 확신 때문이다. ‘민폐’를 끼친 ‘양아치’인 피해자에게는 이토록 냉담한 장대호이지만, ‘회고록’에 등장하는 모텔 종업원 남재윤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개념 상사’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자수로 모텔 경영에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한다. 수사망이 좁혀지는 시점에서도 말이다. 그는 시신 유기 이후 나흘 만에 자수를 하게 되는데, 한강에서 몸통시신이 발견된 직후 자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지금 당장 자수할 수는 없었다. 일단 오늘은 나의 근무날이었고, 내가 지금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면, 짜장모텔이 문제였다. 남재윤은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되었고, 숙박업 경력이 1년 정도뿐이었기에, 모텔의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남재윤에게, 내가 없어도 짜장모텔을 원활하게 관리하고, 그가 일하는 데 막힘이 없도록 인수인계할 시간이 필요했다. 장대호는 범행 이후 오랜 시간을 들여 범행이 일어난 모텔 객실을 청소하는 등 차근차근 증거를 인멸했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증거를 인멸하는 동안 카운터를 비워둔다는 생각에 예전에 그만둔 직원을 부르기까지 했다. 그 직원이 범행이 일어난 객실을 신경 쓰지 않도록 장기 투숙객이 머무는 것으로 가장하기 위해 ‘자기 돈’을 금고에 넣어두면서까지 말이다. 살인이 일어났음에도 모텔 영업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장대호는 자수를 하러 가는 순간까지도 남재윤에게 “내일 나 기다리지 말고 새 사람 구해 써”라며 모텔 일을 챙겼다. ‘
  • “박봉에도 건전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가는 다수의 여성들을 사랑하고 보호하자”는 말로 ‘보로나 바이러스’를 마무리 짓는다. 전형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여성혐오인 성녀와 악녀의 이분법을 체화한 장대호 같은 이들에게 ‘여혐러’라는 비판은 먹히지 않는다. ‘다수의 여성을 사랑하고 보호’하자는 사람이 ‘여성’을 ‘혐오’한다니 말이 되겠는가. 이는 오늘날 수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견해에 제기되는 여성혐오 의혹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와도 같다. 혐오하기는커녕 사랑하지 못해서 문제라고 말하는, 그런 반발 말이다.
  • 심리학에서 ‘자기거대환상’이라고 부르는 정신분석학적 상태를 들 수 있다. 장대호는 스스로를 ‘루저’로 설명하면서도 ‘나는’보다 ‘장대호는’이라는 식으로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며 정당한 복수자로서의 냉철한 이성과 예리한 주의력을 가진 남성을 내세운다. 이는 심리학에서 “자신을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경향”,6 즉 자기거대환상이라 불리는 것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개념 있는 직장 선배’로서의 모습이나 순박한 여성을 보호하는 남성으로서의 모습 역시 자기거대환상의 한 단면이라 할 때, 그가 ‘페미’들에게 느끼는 격렬한 증오는 그의 ‘거대함’ 또는 ‘전지전능함’을 부정당하는 데서 오는 반감이라 할 수 있다.
  • 무엇보다 그의 글에서 살펴볼 수 있는 군가산점제 논쟁이나 ‘키 작은 남자는 루저’ 운운하는 말, 쿠란 3장 34절에 나온다는 경구, 페미니즘으로 인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환멸까지 그의 말들은 모두 일베를 비롯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비난할 때 자주 동원되는 ‘논거’들이다. 다시 말해, 장대호의 글은 장대호가 쓴 것이지만 장대호의 시각은 찾아보기 어려운 글이다.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차별 논쟁에서 흔히 언급되는 ‘생수통’까지 운운하는 그는 사이버공간에서 여성을 비난하는 온갖 클리셰를 몸속 가득 채워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대호는 온라인 여성혐오의 살아 있는 데이터베이스다. 그가 보는 여성은 감정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고의적으로 무고를 꾸밀 만큼 대범하고 교활한 존재다. 이 같은 속성을 한데 아우르는 이들인 ‘페미나치’는 대한민국의 배후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이미 일베 게시물 분석을 통해서도 살펴본 것이다. ‘해군을 철폐’하라고 할 정도로 ‘감정적’이고 ‘무식’한 한편, 자기 차도 없으면서 남자친구가 차가 없다고 투툴거리는 ‘김치녀’들에 대한 게시물이 그것이다. 일베에서 말하는 해결책 역시 장대호가 언급한 쿠란 3장 34절과 다르지 않다.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 일베에서의 여성혐오를, 장대호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교도소에서 종이에 펜으로 적어내려갔다.
  • 자신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부터 자유롭다는 자기인식을 보여준다. “타인의 슬픔을 이용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되지만 “타인에게 슬픔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와 같은 표현은 ‘~은 자유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 따위의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들을 약간 변형했을 뿐인 것으로, 기실 이러한 말들은 온라인에 널리 퍼져 있는 ‘숙어’와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장대호의 이 장황한 편지들은 자신의 생각이라기보다 웹을 부유하는 숙어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러한 평가가 맞는다면, 장대호는 매우 긴 글로 자기주장을 했음에도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장대호는 100여 매에 걸쳐 일베라는 자신의 거주지의 방언만을 장황하게 주절거렸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어렵사리 세상 밖으로 내놓은 글들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그의 뜻이 아니라 그의 자아가 위치한 장소와 심리학적 상태일 뿐이다. 장대호는 ‘일베 루저론’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곧 일베의 말과 생각이 한 사람의 것으로 온전히 체화되었을 때 얼마나 반공동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파멸적인 사례다.
  •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증언만으로 유죄”가 될 수 있는 세상은 “안 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막을 수도 없”는, “상식적으로 정말 말이 안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루리웹 이용자들이 보이는 무고에의 공포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러한 인식하에 루리웹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과 대비되는 사례로 2016년 한 노숙인 여성이 10~20대 남성들을 성추행한 뒤 받은 판결이 언급되었다. 두 판결이 함께 언급된 이유는 가해자가 ‘여자라서’ 가볍게 처벌받은 사례와 가해자가 ‘남자라서’ 가중처벌 받고 유죄 추정을 당한 사례를 비교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루리웹 이용자들은 아마도 이러한 사건들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강남역을 에워싼 추모객들이 들었던 ‘여자라서 죽었다’고 쓴 피켓을 연상하는 듯 보인다. ‘남자라서 유죄다. 남자라서 처벌받는다. 성별을 근거로 한 불이익은 오히려 남성들이 받는다. 남성들은 징병과 무고로 희생당하고, 무죄 추정 원칙에서도 제외된다. 이 같은 제도적 차별을 겪는 남성들이야말로 오늘날의 약자며 소수자다.’
  • 한국 남성들에게 군대 문제는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는 전제이자 자신의 일등시민성을 증명하는 기표이다. 젠더 문제와 관련한 어떠한 논쟁을 하더라도 ‘군대 다녀왔느냐’ 또는 ‘군대 가라’는 말만큼 커다란 ‘벽’은 없는데, 이는 루리웹에서도 마찬가지다. 분석 기간 동안 루리웹에서 군대와 젠더 문제가 가장 크게 충돌한 것은 우습게도 오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방부가 여군병사 모집제도를 부활한다며 140만 원의 급여를 지급한다는 기사에 대해, 루리웹 이용자들은 383개의 댓글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글쓴이 역시 “남자는 개돼지”냐며 “내 소중한 26개월 돌려내”라는 코멘트를 달았을 정도로 이 소식은 많은 이용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중소기업 다니느니 이게 낫겠다”며 “이런 게 시발 진짜 역차별”이라는 말로 분통을 터뜨리는 댓글이 베스트 댓글이었다.
  • 능력주의라는 단어를 창안한 마이클 영이 그 개념의 창안과 동시에 예견했듯이,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20 능력주의 아래서 모든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달린 문제가 된다. 신의 은총, 운, 사회적 배경과 같은 문제는 부차적으로 여겨지거나 종종 무시된다. 모두 각자가 뿌린 대로 거뒀을 뿐이며, 제대로 수확을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애초에 잘못된 씨앗을 뿌린 무지의 소치이거나 제대로 돌보지 않은 나태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런 사회에서 실패란 곧 노력의 부족이자 도덕적 파탄이 된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신자유주의 등 다양한 담론으로 제시된 바 있는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트페미’로 대표되는 영영페미니스트의 저항적 담론 역시 기실 능력주의적 토대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의 도덕적 정당성과 필요성을 설파하면서도 ‘공부하지 않은’ 남성들의 ‘무지’를 멸시하는 능력주의 전략을 취했다.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부조리한 문화와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능력주의가 가진 해방적 측면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능력주의가 해방의 비전을 보여주는 바로 그만큼, 승자의 우월감과 패자가 느낄 모멸감의 앙상블은 공동체를 점점 더 약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행동주의 여성’들만이 능력주의를 내면화한 것은 아니다. 능력주의 신화는 남성중심 사회의 사상적·실천적 기초이며 남성 지배를 정당화하는 원천이다. 루리웹 이용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오늘날과 같은 양성평등 사회’에서는 능력만이 취업이나 승진의 조건일 뿐이기 때문에 ‘유리천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만약 ‘특정 성별’이 불이익을 받았다면 그것은 성별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능력의 ‘결함’ 또는 ‘부재’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것도 그들이 잘 적응한, 또는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된다.
  •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봤던 사례들은 남성 청년이 모여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 사이버공간의 여론적 지층이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소수자’화된 (것처럼 느끼는)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는 공통적인 패턴만을 드러낼 뿐이다. 루리웹은 물론이고 일베, 그리고 장대호 또한 그랬다. 학력 인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성취를 얻어낸 20대 남성은 여성들의 진입으로 인해 격화된 경쟁에,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사회경제적 약자로 살아가는” 20대 남성은 “연애와 결혼시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약자’라는 현실을 절감”하며 자신들의 ‘약자성’을 호소한다.18 ‘모욕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페미’들이 도대체 어떤 ‘버튼’을 눌렀기에 불구대천의 관계였던 일베와도 손을 맞잡은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루리웹을 포함한 ‘보통의 남자들’이 페미와의 전쟁을 통해 회복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것, 또는 정상성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앞선 마경희 등의 연구에서도 나타나듯 20대 남성은 전통적인 성 역할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만나본 일베 이용자들 역시 ‘평범한’ 가정을 바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유토피아’인지에 대한 인지 능력은 있었다. 이와 유사하게, ‘가만히 있는 남성들’이 그리는 유토피아 또한 ‘능력’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투여하여 진학, 취업, 결혼 등의 생애주기를 밟아나가며 배우자와 함께 가사를 분담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 할 때, 이러한 꿈을 좌절시키는 것은 속된 여성이다. 이런 남성들을 ‘선량한’ 남성이라고 해보자. 이 선량한 남성이 보기에 자신은 이미 전통적인 가부장성을 포기하고 동등한 존재로서 여성을 대하며 지금도 충분히 양보했을 정도로 ‘선량함’을 ‘베풀고’ 있는데도, 여성들은 계속해서 ‘몫’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 행동주의자 여성이라는 적은 루리웹의 또 다른 적인 일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악’이다. 루리웹과 일베는 정치적으로는 상극일지언정 사회 전 영역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여기는 ‘엘리트’ 여성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착취받는 피해자이며 소수자라는 인식을 같이한다.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인 줄 안다’는 흔한 인터넷에서의 표현처럼, 루리웹 이용자들은 정치적 올바름과 ‘여성우월주의’를 강요하는 페미들에 맞서겠다며 분연히 떨쳐나선다. ‘정신병’에 가까운 사상과 모욕적인 말을 일삼는 ‘적’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면 상종도 하지 못할 존재들로 여겼던 일베와도 기꺼이 손을 잡는다.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2010년대 페미니즘 물결에 맞서 루리웹은 일베와 함께 반페미 전선을 펴며 사이버공간판 ‘국공합작’의 시대를 열었다. 루리웹에서의 여성 토픽은 기실 이러한 ‘국공합작’ 또는 반페미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사이버공간에서 전개된 전형적인 백래시라고 규정할 수 있다. ‘2030 남성’들이 모여 있는 이 온라인 집단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수의 회원들이 여성 이슈에 적대감을 보이는 상황은 흔히 말하는 ‘20대 남성 보수화’를 떠올리게 하는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귀동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의 “20대는 하나의 ‘세대’로 뭉뚱그릴 수 없으며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큰 계층 간 격차 속에서 살아간다”17는 점에서 루리웹마저 보수화되었다(나아가 ‘일베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일 것이다
  •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산업 역군으로서 가져야 할 이 같은 덕목들은 온전히 이성애자-군필-남성을 전제로 한다. 혹독한 환경에서 상명하복의 원리로 조직할 수 있는 이들, 결혼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을 기대할 수 있는 이들 말이다. 따라서 이성애자-군필-남성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은 ‘비인간’ 또는 이등시민이 된다. 이들의 노동은 노동이 아니고, 이들의 고통은 일등시민의 그것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다.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산업화 국가는 남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그 대가로 행복한 가정이라는 꿈을 선사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까지는, 발전국가 체제의 그러한 기획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베는 유구한 일등시민의 우상을 21세기 버전으로 갱신한다. 이들은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학점과 영어시험, 자격증, 공모전 따위의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 한다. ‘스펙 쌓기’로 요약할 수 있는 청년기 이행경로를 충실히 따르며, 생계유지를 위한 경주에 나선다. 결과가 안 좋다 해도 불만을 품지는 않는다. 일등시민의 ‘모범’을 체화한 일베 이용자들은 ‘내가 못났을(남들보다 노력이 부족했을) 뿐 누굴 탓하겠느냐’는 식의 자기비하적이라고 할 만한 감정적 태도, 즉 수치심을 품고 있다. 일베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수치심은 순응하는 국민을 기획하는 국가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산출물이다. 수치심은 개인의 불만을 제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타인의 불만까지 적극적으로 억압하게 한다. 이들에게 스펙이라는 게임의 룰은 절대적이다. 이 판을 흔드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 일베의 양대 이데올로그로 불리던 성재기 전 남성연대 대표가 사망했을 때도 그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은 성재기의 사망에 대해 “이성적인 어른으로서”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며, “뭐라고 말하기 뭐할 정도로 또라이”라는 말로 냉소할 뿐이었다. 생전에 고인이 일베를 대신하여 ‘싸워준’ 인물이라 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성 전 대표에게 “애정은” 가지만 그의 선택이 “멍청”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성재기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일베 게시판을 가득 메운 추모글조차 “좋은 떡밥”에 편승하여 “일베 한번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짜낸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베 이용자에게는 이러한 행위들도 그저 “웃기다”. 오유를 비롯한 ‘좌좀’들의 “감성팔이”를 시종일관 비난해온 일베에서 “멍청한” 짓을 한 성재기를 영웅화하며 “감성팔이”를 ‘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른바 ‘MZ 세대’의 언저리에 있는 90년대생들은 110을 상회하는 압도적인 성비 아래 최소 10%의 혼인적령기 남성은 연애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한편, 저소득층 남성들은 결혼을 ‘못’ 하고 중산층 여성들은 결혼을 ‘안’ 하는 상황은 더욱 심화되었다. 산업화 시대의 평범함은 더 이상 노력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표준이 아니다.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약속은 파기되었다. 평범은 이제 도달 불능점이다.
  •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했듯이 ‘웃음’에 대한 일베의 강박은 편집증적이거니와, 이들의 웃음은 타자가 보여주는(또는 스스로 폭로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대한 쌀쌀한 키득거림, 즉 냉소였다.
  • 일베 이용자들이 품은 수치심은 타자화 과정에서의 동정심을 제거하여1 ‘혐오 사회’의 문을 열어젖힌다. 이러한 서술이 맞는다면, 타자의 고통을 억압하고 그 개별성을 거세하는 평범 내러티브의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 그 자체다. 일베 이용자 개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증상이지, 원인도 원점도 아니다. 한국 산업화의 원천은 혐오였으며, 혐오자들은 국가가 그 발전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체계적으로 생산해낸 도덕적·정치적 산출물이다.
  • 평범 내러티브라고 하는 내용과 ‘내로남불’과 냉소를 위시한 공격이라는 형식을 그가 갖추었으며 능력주의라는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비전인 능력주의부터 살펴보자. 그는 2022년 1월 한 인터뷰에서 “이준석 대표가 자주 이야기하는 공정과 정의에 대해 정의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회사원의 아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고 최고의 학교를 다니고 나중에 제1야당 당대표까지 할 수 있으면 그게 공정이라 생각한다”14라고 대답한 바 있다. 천관율 전 《시사인》 기자와의 협업 과정에서 일베 이용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의미연결망으로 분석한 내용*과 거의 정확하게 공명하는 이 짧은 대답에서, 이준석은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스스로를 능력주의의 롤모델로 위치시킨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공부 열심히 해서 …… 최고의 학교”에 다녔다고 하는 능력 증명의 체계다. 그는 이 짧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회사원의 아들”임을 강조하며 능력주의의 해방적 측면, 즉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 능력에 걸맞는 지위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이상을 설파한다.
  • 일베로 대표되는 혐오라는 현상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주작용’”13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술수에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술수는 ‘적’이 언젠가 뱉은 말을 탈맥락화시킨 후,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을 과장하여 그것을 상대의 추악함으로 부각함으로써 원래의 발언이 가지고 있던 도덕적 함의를 파괴하는 것이다. 전장연과의 갈등 국면에서 그가 동원한 말은 ‘버스 타세요’였다. 이 발언은 2022년 2월 장애인 이동권투쟁 지하철 시위 과정에서 “할머니 임종을 봐야 한다”고 소리치는 승객에게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저도] 그런 걸 당해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저도 그래서 임종을 못 봤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한 발언의 전후 맥락이 삭제된 것이다.17 이준석은 사태의 전후 맥락을 삭제하여 상대의 발언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데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맥락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재능에 날개를 달아준다. 그는 자못 당당하게 되묻는다. “최근 유가도 많이 올라서 통근 거리가 멀어도 자차[자가용]를 포기해야 하고 멀어서 지하철 외에는 방법이 없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도] 월요일 아침에 ‘버스 타고 가면 된다’라고 일갈할지 궁금합니다.”18
  • 능력주의적 디스토피아의 도래다. 하물며 모멸을 주는 이들이 일베적 형식까지 취한다면 누구도 패배와 모욕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을 그 사회가 얼마나 참혹할지는 말할 것도 없다.
  • 나는 최근 ‘영끌’의 결과였으나마 아주 운이 좋게도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는 행운을 얻었다. 생애 처음으로 구매한 집이다 보니 거의 매일 입주민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완공이 얼마 남지 않았던 봄날, 입주민 카페에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셔틀버스를 위해 단지 내에 마련된 공간을 두고 ‘소란’이 있었다. 소란인즉슨 그 공간의 이름이 ‘맘스라운지’라는 데 따른 것으로, 이를 다른 이름으로 교체해줄 것을 건설사에 요구하자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아빠의 재택근무를 이유로, 또 누군가는 양육자에 엄마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지속된 이 소란은 ‘맘스라운지’를 새긴 표지판을 이미 발주해 수정하기 어렵다는 시공사의 답변으로 마무리되었다. 오후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과도 같은 이 에피소드의 진정한 재미는 소란을 일으킨 이들이 대개 남성이었다는 데 있다. 이들 중에는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개새끼’라고 불렸던 20대가 있을 것이고,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라 여겨지는 3040 세대가 있을 것이며, 육아 ‘분담’에 불만이 있을지언정 어영부영 아이들 손을 잡고 등원은 시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 중 누군가는 과거 그 누구보다 열띠게 ‘개똥녀’를 색출하며 분노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에 닿으면 여전히 일상의 작은 경험과 관계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으며, 그러므로 여전히 새로운 역사를 도모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 일베를 가득 채우는 온갖 드립과 클리셰는 의미를 창출해내는 담론이라기보다는 시시덕거림에 가깝고, 일베 안에 의례가 존재하기는 하나 그것은 표상을 만들어 ‘우리’를 낳지는 못하는 불임不姙의 의례이다. 가령 ‘노알라’라는 표상이 ‘일베충’임을 드러내는 코드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드립’에 머무르는 이러한 표상은 ‘우리’를 만들어내는 현실적인 힘이 지극히 미약하다. 일베에서 자주 이야기되듯이 각종 어그로성 드립의 핵심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도전 자체가 아니라 성스러운 것을 비꼬았을 때 돌아오는 ‘씹선비’들의 반응이 ‘우습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 반응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그것으로 일베의 의례는 성공한 것이 된다.* * 설령 분노, 즉 그들 나름의 정의로운 회복에의 의례라 할지라도 그들이 본질적으로 부족인바, 열광적 의례로 그들의 도덕감정이 회복되었다 한들 일베의 도덕이 일반의 도덕과 공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임임은 마찬가지이다.
  • 나는 일베가 보여주는 이러한 열광을 ‘연대를 만들어내지 않는 열광’, 다시 말해 차가운 열광이라고 부르고 싶다. 차가운 열광은 타자를 향한 냉혹한 폭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열광은 ‘희생자’인 타자에게는 물론 동료이며 ‘가해자’인 ‘우리’에게조차 냉담한 열광이고, 일베라는 공간 자체는 공적이되 그 구성원들은 사적인 공간에, 즉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 머물러 있기에 가능한 열광이다. 일베와 피해자들 간의 감정적 거리가 먼 만큼이나 같은 일베 이용자들 역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함께 ‘모인다는 사실’이 촉발하는 전류가 생길 수 없고, 잠시나마 튄 전류조차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한다.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농성장 옆에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이뤄진 이른바 ‘폭식집회’가 장기적인, 또는 집중적으로 대규모의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즉, 정치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해야 하는) 집회가 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일베 이용자들은 서로를 ‘우리’로 지칭하지 않는다. 이는 친목 금지의 문화에서도 나타난 것이며, 더 나아가면 일베는 ‘국뽕’과 같은 애국주의에도 선을 긋는다. 마치 자신들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데 주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이들을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자이자, 반공보수를 넘어선 ‘정글보수’*와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정말 심하게 표현한다면, 언어적 표현이 배배 꼬였을망정 진정한 ‘근대적 자아’로까지 오해할 수도 있다. *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지향하는 맥락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정글을 언급한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라. 〈이준석 열풍…… 반공수구 누르고 ‘정글보수’가 등장했다〉, 《경향신문》, 2021.06.19

English Version

"The Era of Ordinary Ilbe Users" Complete Guide | In-Depth Analysis of the Controversial Sociological Study on Hate Structure

Hello, this is mosey wanju from "What to do in Wanju?"

Today, I want to provide an in-depth look at the controversial book "The Era of Ordinary Ilbe Users" which offers an academic analysis of online hate culture. This book doesn't simply examine the specific site called Ilbe, but rather provides a sharp analysis of hate sentiment and meritocracy culture that has permeated our entire society.

Author Kim Hak-jun: Authority on Online Culture Research

Kim Hak-jun (born 1984) is a South Korean sociologist and expert in online hate phenomena and internet culture analysis. His unique background as someone who "went from Unitel to Freechal, DC Inside, and Instagram as an internet addict" means he's a rare researcher who combines insider perspective on online culture with academic analytical skills.

Key Career and Research Background

  • Master's degree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Sociology (2014)
  • Master's thesis: "Emotional Dynamics of Hate and Enthusiasm in Internet Community Ilbe Storage"
  • Media Analysis Team Leader at Ars Praxia Co., Ltd.
  • Data Analyst at Seoul City Hall Big Data Office
  • Currently working at LG CNS

Kim Hak-jun's research goes beyond simple theoretical approaches, gaining attention for empirical research based on actual data analysis and field experience.

Core Analysis of "The Era of Ordinary Ilbe Users"

Background of the Book's Creation

This book is a work that expanded the author's 2014 master's thesis into a book form 8 years later. The original thesis gained attention as pioneering research that academically analyzed the Ilbe phenomenon, and this book was completed through accumulated data and in-depth analysis.

Uniqueness of Research Methodology

The greatest strength of "The Era of Ordinary Ilbe Users" is its thorough empirical research:

  • Quantitative research: Complete analysis of 810,000 Ilbe posts from 2011-2020
  • Qualitative research: In-depth interviews with 10 Ilbe users
  • Time-series analysis: Analysis of correlations between political events and Ilbe activity

This methodological rigor enables objective and scientific analysis of hate phenomena rather than emotional approaches.

Core Concept: "The Era of Longing for Ordinariness"

The book's most important insight is the analysis that what Ilbe users pursue is 'ordinariness'. The author explains this as follows:

"As a result of meritocracy and fragmentation, the harsh reality where even 'ordinary and modest dreams' are difficult to achieve in a system of everyone-for-themselves creates hate"

This provides an important perspective that approaches hate as a social structural problem rather than individual moral failing.

The Revolutionary Concept of "Cold Enthusiasm"

Kim Hak-jun's concept of "cold enthusiasm" is a key keyword for understanding the Ilbe phenomenon. This means enthusiasm that doesn't create solidarity - collective excitement that is actually individualized and escapist.

This concept is being utilized as an important tool for understanding various online phenomena in our current society and is also useful for analyzing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al mobilization and online culture.

The book comprehensively analyzes not just Ilbe but also communities like Ruliweb that are at opposite ends of the spectrum, showing that "discourse spaces without self-reflection" can become similar to Ilbe at any time.

Why You Should Read This Book Now

Timeliness: "Ilbe is over, but Ilbe-like things have spread"

Many people ask "Why Ilbe so late?" but the author clearly refutes this. The core problem consciousness of this book is that while Ilbe's value as a research subject has now declined, the influence of 'Ilbe-like things' has actually expanded throughout society.

Structural Approach: Beyond Individual Blame

"It's too easy to blame individual Ilbe users. But they are symptoms of problems Korea is facing, not the cause or origin. The source of Korea's industrialization was hate, and haters are moral and political products systematically produced by the state as needed during its development process."

This structural approach is essential for understanding various social problems we currently face.


Tags: 보통일베들의시대, 김학준, 일베, 혐오문화, 사회학, 온라인커뮤니티, 능력주의, 인터넷문화, 사회구조, 정치학, 미디어연구, 한국사회, 도서추천, 사회과학, 문화연구, 디지털사회, 온라인혐오, 사회분석, 커뮤니티분석,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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